[ ★ ] 독립운동가 :: 여천(汝天) 홍범도 장군
⊙ 출생
1868년 8월 평양, 가난한 평민 출신
⊙ 가족
*아내 : 일제의 인질로 잡혀 갔고 홍범도 장군을 회유하는 편지를 쓰라고 강요 당하였다
결코 펜을 들지 않았고 모진 고문으로 옥사
*첫째 아들 : 전투 중 사망
*둘째 아들 : 사망
⊙ 홍범도 장군님의 모습은?
* 사진으로는 단신으로 여겨지지만 실제 홍 장군은 신장 190cm에 이르러 ' 구척장신의 장군'이라고 불렸다
*일본군은 홍범도 장군을 날아다니는 '비(飛) 장군'이라고 불렀다
* 20대 삼포수 시절 "총알로 바늘귀도 뚫는 사람"이라고 불렸다
⊙ 살아오신 길
*9살에 고아가 된 이후 머슴살이
* 1883년 : 군입대 -> 백발 백중의 사격 솜씨 -> 삼정문란의 부패로 악질 군교를 때려 눕히고 도망쳤다
* 1886년 : 황해도 수안군 제지소에서 일을 했다
*1890년 : 금강산 신계사를 찾아감
=> 임진왜란때 승병들의 이야기를 듣게 됨 -> 정신적인 교훈을 많이 배웠다
*1895년 : 의병 김수협과 만남 (인생의 터닝 포인트!)
* 1907년
=> 고종의 헤이그 특사파견을 빌미로 고종황제 강제 폐위, 대한제국 군대 강제해산 시킴 -> 의병들의 분노
-> 민간인 총기 강제 회수 -> 홍범도 장군은 일제의 만행에 분노를 하고 포수들을 규합했다
=> 일본군과 여러차례 교전, '하늘을 나는 홍범도'라고 불렸다
=> 홍범도와 차도선이 이끄는 산포수 의병부대의 첫 전투 거행! -> 일본군에게 치명상 입힘
*1914년
=> 일본군의 포위망에 소수의 인원으로 이끌고 중국 '밀산'에 자리 잡음
=> 홍범도장군은 소학교와 무관학교를 설립 직접 교장을 역임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가르치고 독립군을 양성함
*1919년 3월 1일 : 삼일 운동
=> 삼일 운동 이후 연해주에서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 대표들이 '대한 국민 의회' 결성
=> 군무부 병력을 기초로 '대한 독립군' 창설, 사령관에 홍범도 장군이 선출됨
* 1920년
"최후의 한사람까지 분투하여, 우리 독립을 최후까지 외치다가 죽은 후에야 그쳐야 한다"

1. 봉오동 전투
=> 홍범도 장군과 최진동 장군이 이끈 우리 독립군이 중국 봉오동 골짜기에서 일본 정규군 '월강추격대 (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하는 특수부대)'와 독립 투쟁 최최의 전면전을 벌여 일본군을 상대로 사상자 450여명을 내고, 독립군의 의지를 한껏 드높였다. 임시정부가 '독립전쟁의 해'를 선포하지 불과 5개월 만에 일궈낸, 무장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승리였다
=>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 안무의 '대한북로독군부군, 이흥수의 '대한신민당' 등 많은 독립군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그 뜨거운 마음이 단합력으로 나타나며 성공으로 이어졌다
2. 청산리 전투
=> 홍범도의 '대한북로독군부' +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연합하여 대승!
3. 간도참변...
=> 독립군과 조인인을 무차별 학살 함
*1925년 : 일소조약으로 독립군은 무장해제를 당함 -> 러시아 군으로 편입 -> 그 생활이 오래가지 못했다
⊙ 마지막 이야기
![스페셜 리포트] 홍범도 장군 유해는 왜 못 돌아오고 있나](https://weekly.chosun.com/up_fd/wc_news/2556/bimg_org/2556_36.jpg)
연해주에서 살다가 스탈린이 정권을 잡으면서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된 홍범도 장군은 고려 극장의 야간수위로 일하였고 해방을 2년 앞두고 75세의 나이로 (1943년 10월 25일) 하늘의 별이 되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아직 카자흐스탄에 있다
2020년 문재인 대통령은 '봉오동전투 전승 100주년'을 맞아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봉환하여 최고의 예우로 보답할 것을 다짐했다
![단독]文, 21일 카자흐 방문 계기 홍범도 장군 유해송환 추진](https://thumb.mt.co.kr/06/2019/04/2019041215417679217_1.jpg)
⊙추가
홍범도 장군은 평생을 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까지 올랐던, 독립군으로 가장 치열하고 지속적인 투쟁을 벌였던 우리 민족의 영웅이다
*영화 : 봉오동 전투 후반부의 최민식이 맡은 역!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유해진이 "왜 독립군 수를 알 수 없는지 알아? 어제는 농사를 짓던 사람이 내일은 조총들고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말이야!!!"입니다
동물을 잡던 포수가 일본군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독립군이 되었다
장군을 가만히 두지 않는 시대와 뜨거운 가슴, 굴하지 않는 정신과 판단력!
하지만 대한 독립만을 생각하며 노력하고 희생했던 분이셨는데 상황이 변함에 따라 타지에서 야간 수위로 일을 하시게 되었고, 돌아가신 이후에도 아직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속이 상합니다 ㅠㅠ
하루라도 빨리 우리 나라로 돌아와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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